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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맺힌 영화 ‘귀향’
김재하 | 승인2016.09.18 21:21

 

“몰라요...” 과거와 현재의 변함없는 외침이다.

위안소 내에서 만난 착한 일본군의 물음 “너 이름이 뭐니? 아니...일본 이름 말고...”

그러자 소녀는 울먹이며 “몰라요...”

영화 속 안타까운 장면이다.

“너 위안부 아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얼마나 한 맺힌 삶을 살아오셨는지 아니?”

라는 질문에 답하길 “몰라요...”

나 몰라라 관심 없는 현대인들.

영화 밖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의식을 깨워주고 맺힌 한을 풀어줄 열쇠 같은 영화가 ‘귀향’이다.

귀향은 이러한 영화가 세상 밖에 나와 준 것만으로도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그것에 힘입어 ‘검사외전’을 제치고 1위를 자리를 차지하는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내용은 얼마나 감동적이며 우리의 의식을 일깨워줄까?

영화는 현대에 사는 소녀가 흉악범에게 아버지를 잃고 강간까지 당하는 일을 겪는다. 이로서 위안부 피해자 소녀와의 연결고리를 들고 진행이 된다.

귀향은 단순히 끔찍한 사건을 그대로 보여주며 피해자들의 슬픔과 아픔만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로인해 맺힌 한들을 보여주었다.

슬퍼 우는 눈물보다도 아련한. 가슴속에 묻혀 응어리진 한들을 말이다.

부모와 이별한 슬픔, 소녀의 순결을 성노리개로서 더럽힌 아픔, 기억되지 않는 한, 사과 받지 못한 절망...

이런 것들이 극중의 무당을 통해 잘 표현이 되었다.

무당이 주는 익숙지 않은 묘한 분위기. 징과 장구, 하얀 승복과 무당의 몸짓이 만들어내는 그 분위기는 당시에 맺힌 한과 여태껏 묵혀온 한들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어쩌면 다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피해자분들의 깊고 깊은 슬픔과 아픔을 다 헤아리기 힘들 터이니 말이다.

이러한 무당의 등장 장면 또는 다른 방식으로의 맺힌 한을 표현하는 장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 자칫 지루하고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또는 아픈 역사를 그려낸 영화에 무당이라는 극적인 요소가 들어가서 그 사실을 다 표현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는 다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느끼시는 아픔과 슬픔은 세월이 흘러 쌓이며 단순한 아픔과 슬픔이 아닌 가슴속의 한이 되었다. 영화는 그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제 집에 가자...”하는 장면보다도 가슴이 미어지는 장면이었다.

가슴속 한을 어르고 달래어 풀어주고 치유하여 보내주는 무당의 역할. 이제 영화 속만이 아닌 현실에서 치유를 할 때이다.

영화의 여운이 다른 관객에게도 전해졌을까? 이제 사람들이 움직여줄까?

아직 우리에게는 많은 과제가 있다. 지금까지 몰랐다면 아니면 움직이지 않았다면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

공원에 있던 소녀상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대학생들이 왜 추운 겨울날에 밤까지 지새우며 동상을 지켰는지를 알아봐주자. 왜 우리는 당연한일에 사과 받지 못하는 것인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는 언제까지 움츠리셔야하는지...

작은 관심들이 모여지면 이루어낼 수 있다.

영화 ‘귀향’이 피해자 할머니들의 맺힌 한을 풀 수 있는 첫 걸음이 되었길 바란다.

 

*이 글은 '2016년 봄학기 영화로 보는 세상' 시간에 조정래 감독의 영화 '귀향'을 보고 쓴 영화감상문이다.


김재하  nori9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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